241005
2024. 10. 5. 04:35
이름을 알면 당신을 죽일 수 있는거죠?




아 진짜? 그건 몰랐는데~.



그렇게 가볍게 넘길 주제 아니잖아요.



…그런가? 으으음……. 이제 나를 죽일 생각이 들었나봐?



당신을 죽여주길 바라는 거예요?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고.



수녀님.
수녀님은 내가 수녀님한테 이름 왜 알려줬다고 생각해? 그거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어?



왜 없겠어요, 몇번이고 생각하다가 이렇게 물어보는건데.
…불멸의 삶을 한낱 인간의 손에 맡겨버리고. 진짜 별나.

그럼 악마, 아니… 루이엘도 대답해봐요.
루이엘은, 제가 당신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음.. 인간들 말로는 뭐라하더라.
정? 그래. 정이라고 하지. 인간은 무생물에게도 정이란 것을 주고 아끼는데. 나에게 줄 정도 남아있지 않겠어요? 그게 비록 신을 모시는 이라고 해도.

그리고 나도.. 인간이랑 함께한 세월이 수녀님 생각보다 훨씬 길어서.
이정도면 대답이 됐으려나?



원래라면 그런 정같은 것 주면 안 됐어요. 웃기잖아, 한낱 정때문에 악마를 죽이지 못하는 수녀 이야기. …인간은 항상 그래, 후회할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걸 막지 못해요. 조금 더 차가운 사람이 되었어야 했을까요? 처음 만났을 때 더 강하게 내쳐야 했을까요? 그랬다면 당신이 나를 이렇게 생각 않았을까요?

…당신이 조금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당신도 조금은 더 살고싶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루이엘, 당신이 원한다면 죽여줄게요. 이게 당신이 진짜 바라는게 맞다면, 지금도 죽기를 원한다면.



……수녀님. 지금 나를 죽이지 않으면 죽을때까지 고생할건데. 그래도 괜찮으려나? 나같은 악마는 양심이 없어서 이렇게 살려주면 은혜를 원수로 갚을텐데. 악마는 욕심이 많거든.

…그리고 아스테리. 나는 죽고싶어서 이름을 알려준게 아니야.
그냥, 수녀님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어. 참혹하게 죽는다 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하,… 나는.. 생각보다 수녀님이 더 소중한가보네.
이렇게 다 말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인간들은 바보라서요. 언젠가 지금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날이 생길지도 모르죠. 아니, 생기겠죠. 장난이 되건 진심이 되건. 놀아나는거죠, 다시 한번. 내가 놓아버린 악마에게.

...... 참나, 인간들의 말이 어쩌구 하더니. 정은 저만 준 것은 아닌 모양이네요? 가장 마지막 순간에 제가 미워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자신감 넘치는 말을 하시는지. …지금 이런 말 하는 걸 보니 얼추 마음 정리는 다 하신거죠? 팔자 좋게.

괜찮아요, 저는 듣는 것을 아주 잘 하니까.
그리고 루이엘, 감정이라는 것은 양방향이에요. 당신이 나를 소중히 여긴다면, 그만큼 상대도 그 감정을 느낀다고. ...당신의 감정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에요. 알았어?



하, 역시 수녀님에게는 못당하겠네~…

……수녀님. 옛날얘기 해줄까요?
예전에 악마중에 인간에게 정을 준 악마가 존재했어요. 그리고 그 악마는 인간의 손에 죽었어요. 그때, 악마의 표정은 어땠을까요? 분노했을까요? 수녀님 말처럼 그 인간을 미워했을까?

다 아니었죠.
처음 이름을 줬을 때 부터 예상했던 일이라며 웃었어요.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눈을 감았죠. 저는 그 악마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악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지금 세상에서 두번째로 멍청한 악마가 돼보려고 해요.



…멍청하다고 생각했으면 그러지 않았어야지.
당신도 참 바보야, 바보.

운명이라는 것이 있나봐요. 악마와 수녀라는 존재는 같은 하늘 아래에 오래 있을 수 없는 존재잖아요? 비유하자면… 해와 달처럼. 그래도 아직은 초저녁이에요. 태양과 달이 동시에 떠있는 이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때가 오기 전까지 마음의 준비를 해둘게요.
…부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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