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알면 당신을 죽일 수 있는거죠?
—
아 진짜? 그건 몰랐는데~.
—
그렇게 가볍게 넘길 주제 아니잖아요.
—
…그런가? 으으음……. 이제 나를 죽일 생각이 들었나봐?
—
당신을 죽여주길 바라는 거예요? 기다렸다는 듯이 말하고.
—
수녀님.
수녀님은 내가 수녀님한테 이름 왜 알려줬다고 생각해? 그거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어?
—
왜 없겠어요, 몇번이고 생각하다가 이렇게 물어보는건데.
…불멸의 삶을 한낱 인간의 손에 맡겨버리고. 진짜 별나.
그럼 악마, 아니… 루이엘도 대답해봐요.
루이엘은, 제가 당신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죽이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요?
—
음.. 인간들 말로는 뭐라하더라.
정? 그래. 정이라고 하지. 인간은 무생물에게도 정이란 것을 주고 아끼는데. 나에게 줄 정도 남아있지 않겠어요? 그게 비록 신을 모시는 이라고 해도.
그리고 나도.. 인간이랑 함께한 세월이 수녀님 생각보다 훨씬 길어서.
이정도면 대답이 됐으려나?
—
원래라면 그런 정같은 것 주면 안 됐어요. 웃기잖아, 한낱 정때문에 악마를 죽이지 못하는 수녀 이야기. …인간은 항상 그래, 후회할만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걸 막지 못해요. 조금 더 차가운 사람이 되었어야 했을까요? 처음 만났을 때 더 강하게 내쳐야 했을까요? 그랬다면 당신이 나를 이렇게 생각 않았을까요?
…당신이 조금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당신도 조금은 더 살고싶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루이엘, 당신이 원한다면 죽여줄게요. 이게 당신이 진짜 바라는게 맞다면, 지금도 죽기를 원한다면.
—
……수녀님. 지금 나를 죽이지 않으면 죽을때까지 고생할건데. 그래도 괜찮으려나? 나같은 악마는 양심이 없어서 이렇게 살려주면 은혜를 원수로 갚을텐데. 악마는 욕심이 많거든.
…그리고 아스테리. 나는 죽고싶어서 이름을 알려준게 아니야.
그냥, 수녀님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어. 참혹하게 죽는다 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하,… 나는.. 생각보다 수녀님이 더 소중한가보네.
이렇게 다 말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
인간들은 바보라서요. 언젠가 지금을 뼈저리게 후회하는 날이 생길지도 모르죠. 아니, 생기겠죠. 장난이 되건 진심이 되건. 놀아나는거죠, 다시 한번. 내가 놓아버린 악마에게.
...... 참나, 인간들의 말이 어쩌구 하더니. 정은 저만 준 것은 아닌 모양이네요? 가장 마지막 순간에 제가 미워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자신감 넘치는 말을 하시는지. …지금 이런 말 하는 걸 보니 얼추 마음 정리는 다 하신거죠? 팔자 좋게.
괜찮아요, 저는 듣는 것을 아주 잘 하니까.
그리고 루이엘, 감정이라는 것은 양방향이에요. 당신이 나를 소중히 여긴다면, 그만큼 상대도 그 감정을 느낀다고. ...당신의 감정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에요. 알았어?
—
하, 역시 수녀님에게는 못당하겠네~…
……수녀님. 옛날얘기 해줄까요?
예전에 악마중에 인간에게 정을 준 악마가 존재했어요. 그리고 그 악마는 인간의 손에 죽었어요. 그때, 악마의 표정은 어땠을까요? 분노했을까요? 수녀님 말처럼 그 인간을 미워했을까?
다 아니었죠.
처음 이름을 줬을 때 부터 예상했던 일이라며 웃었어요.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눈을 감았죠. 저는 그 악마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악마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지금 세상에서 두번째로 멍청한 악마가 돼보려고 해요.
—
…멍청하다고 생각했으면 그러지 않았어야지.
당신도 참 바보야, 바보.
운명이라는 것이 있나봐요. 악마와 수녀라는 존재는 같은 하늘 아래에 오래 있을 수 없는 존재잖아요? 비유하자면… 해와 달처럼. 그래도 아직은 초저녁이에요. 태양과 달이 동시에 떠있는 이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때가 오기 전까지 마음의 준비를 해둘게요.
…부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지 않았으면 좋겠네요.